타이틀
HOME > 정보센터 > 뉴스정보
이름 관리자 이메일 wdss1@daum.net
작성일 2020-04-30 조회수 36
분류 [사회/문화] 파일첨부
제목
(인물)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시각장애 이복심 씨의 삶-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4-29 15:51:40
동사무소에서도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해 주었다.

“수급자는 되었지만, 남편이 있다고 수급비를 40만원 밖에 못 받았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그래도 눈이 아파서 병원에는 다녀야 했다. 수급자가 되어 병원비는 공짜여서 한숨 돌렸지만 여섯 식구가 40만원으로 살기에는 빠듯했다.

“남편 벌이도 시원찮은데 그래도 남편이 있다고 40만원 밖에 안 준다니…….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습니다.”

오카리나를 불며.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오카리나를 불며. ⓒ이복남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헤어지자. 돈 때문에 찌지고 볶고 사느니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가 살아야 했으므로 남편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 둘은 이복심 씨가 맡기로 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사였습니다.”

LH공사에서 얻어주는 주택으로 애 둘을 데리고 이사를 했다.

“집세가 안 나가는 집으로 이사를 한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에 밀린 달세도 안 주고 나왔으니 주인이 괘씸했을 거라고 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밀린 집세는 갚아야지요.”

그러면서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당뇨 때문에 내과도 다니고 눈 때문에 안과도 다니고 했는데 이제 눈은 안 아파서 안과에는 안 갑니다.”

지인의 소개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알려 줍디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나도 시각장애인이 되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일러 준 대로 구포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갔다.

“세상에나, 나 같은 시각장애인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오는 사람들은 재활교육을 받으러 오는 시각 초보자들이고 실제로는 시각장애인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복지관에서는 처음 시각장애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팡이 짚는 법, 버스나 지하철 타는 법 그리고 점자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재송동에서 구포에 있는 복지관은 어떻게 다녔을까?

“재활교육을 6개월 동안 받았는데 교육을 받을 때는 복지관 차가 우리 집까지 왔습니다.”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재활교육을 받고 나면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 다음 단계가 맹학교나 안마수련원에 입학해서 안마사로서의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젊은 시각장애인의 경우 사회계열 직종, 교사,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을 찾아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눈이 계속 아팠기에 안마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대신 복지관에서 하는 요가, 댄스, 난타, 노래, 숏다운(시각장애인 탁구), 실내조정(기계)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재활교육을 받을 때는 차가 왔지만 그 다음에는 활동지원사가 와서 재송동에서 충렬사까지는 자비콜(장애인콜택시)를 탔고, 충렬사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시각장애인복지관은 구포에 있는데 충렬사역에서 4호선을 타고 미남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숙등역에 내리면 복지관 서틀버스가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해운대장애인자립센터에서 오카리나를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덕천 주공아파트에 자리가 나서 이사를 했다.

“본래 재송동에 살았기에 애들 학교도 그쪽인데 작은애가 전학을 안 하고 싶다 해서 학교는 그냥 다녔습니다.”

딸과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딸과 함께. ⓒ이복남
현재 큰딸은 대학교 3학년이고 작은아들도 올해 대학에 입학했단다.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몇장 보내 달라고 했더니 사진이 없다고 했다.

“몇 번 이사 다니면서 다 버렸습니다.”

아마도 과거를 지우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아픈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앞을 보지 못하니 옛날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진 몇 장은 새로 찍은 사진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복지관이 문을 닫아,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도 없지만, 복지관 하고 상관없이 제가 좋아하는 것은 노래와 등산입니다.”

시간이 나면 지인들과 어울려 노래방을 가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등산을 간단다.

요즘은 어느 산으로 주로 다닐까.

“눈 감은 사람이라 보는 사람 도우미가 있어야 되는데, 일광이나 기장쪽으로도 가고 범어사나 금정산으로도 가고 합니다.”

등산은 같이 어울리는 몇몇 사람이 봉사차량 2~3대에 나눠 타고 산 아래서 내려서 인솔자를 따라서 걸어간다고 했다.

“산새소리 솔바람소리 얼굴에 닿는 산의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걷고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 등산길이 최고로 행복하단다.

“저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정말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애인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덕분에 애들도 학비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가끔 언론에서는 아이들이 수급자라서 상처를 받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수급자가 아니었다면 생활비뿐 아니라 병원비며 아이들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느냐며 당국에 감사한다고 했다.

“저는 복지혜택도 다 받고 있고, 우리 아이들도 착하고, 눈 감은 것 외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지체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등 많은 장애인을 만나보니 자신의 장애는 정말 별거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누구나 못 가진 것에 욕심내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면 저처럼 행복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에 만족하는 행복도 있고,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행복은 주관적인 만족감이니까.

“해마다 봄은 오고 또 그렇게 가지만, 올봄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유달리 어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제게는 그냥 그렇게 여느 때나 다름없이 봄날은 왔다가 가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이란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즐거운 순간순간이 반복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쾌락주의자의 행복도 있고,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의 성취감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돈과 행복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복심 씨처럼.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이전글 ‘온라인 장애인 공직설명회 국방부 편’ 영상 제공
다음글 장애인 보조공학기기 지원 ‘사각지대’ 한숨